천여년 이어 내려온 군자봉 성황신의 영험함을 상징하는 정상의 느티나무를 감돌아 부는 시원한 바람

관람시기

연중

위치

군자동 산 22-3 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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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5 | 지도 크게 보기 ©  NHN Corp.

대중교통

안산역에서30-7,61,오이도역에서 25번이용 구지정 아랫말 하차 동북쪽으로 25분

자가용

39번 도로 안산방향- 영각사 입구 하차 서쪽으로 20분

대표음식

인근 시가지에 갈치회조림, 설렁탕, 추어탕, 갈비집

관광자료

군자봉은 삼국시대 한강유역과 남양만의 교통요지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간신앙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영산으로도 유명하다. 산정상에는 수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곳 소원당에서 매년음력 10월 3일 신곡 맞이 행사로 1천여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군자성황제를 지내오고 있다. 군자봉은 행정구역상 시흥시 군자동과 장현동 능곡동 사이에 위치한 높이 199미터의 봉우리로서 주변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문헌자료

군자봉 또는 군자산이란 명칭은 조선시대 문종(文宗)과 단종(端宗)의 안산 거둥과 관련하여 전해지는데, 『문종실록(文宗實錄)』을 통해 문종의 안산 행차는 찾을 수 없고, 『단종실록(端宗實錄)』에는 재위 2년째인 1454년 9월 29일에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昭陵)을 참배한 뒤 다음날 안산에 머문 사실이 있어서, 문종보다는 단종이 군자봉을 보고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각종 지지자료(地誌資料)중에서 현재의 군자봉을 가리키는 ‘군자(君子)’란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안산군조이다. 여기에는 산명(山名)이 ‘군자산’으로 나와 있는데, 부가된 설명에 성황사(城隍祠)가 있다고 하였고, 이어 1843년에 편찬된 『경기지(京畿誌)』 안산군조에 성황단(城隍壇)과 함께 군자봉이 나오며, 1864년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군자봉만 표시되어 있다. 또 1871년 편찬된 『경기읍지(京畿邑誌)』 안산군조에는 군자산이, 1894년 편찬된 『기전읍지(畿甸邑誌)』 안산군조에는 ‘성황(城隍)’과 함께 군자산이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각종 지지자료(地誌資料)의 표기방식으로 보아 ‘군자산’과 ‘군자봉’은 별 의미 없이 혼용되었으며, 현재 주민들은 주로 군자봉이라 부르고 있다. 조선의 정조 임금은 1797년에 수원 현륭원으로 행차하는 도중 시흥시 지역을 지나면서, “깃발을 펄럭이며 바닷가로 돌아드니(風海門廻), 소래산의 수려한 빛 눈이 번쩍 열리도다(秀色蘇來眼忽開), 드높은 군자봉 바로 앞에 솟았으니(君子峰高入指點), 혹여 그 안쪽에 숨은 인재 있으려나(非中有隱淪才)”라는 시를 지었는데,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자 하는 임금의 뜻과 함께 너른 평지에 우뚝 솟아있는 군자봉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