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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EUNG CITY 문화/관광

월곶귀항선

관람시기

연중 만조시기

주변 주요 유적지

시흥 방산동 청자백자요지 (국가 사적 제413호)
이곳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기까지 청자와 백자를 굽던 가마터로, 벽돌을 이용하여 가마를 지은 구조로서 초기 청자가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현재는 복토되어 있지만, 가마의 남아있는 상태가 좋고 출토품도 많아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위치

  • 시흥시 월곶포구

대중교통

  • 오이도역 : 1번 버스 승차- 월곶동주민센터.월곶포구 정류장 하차- 도보 2분
  • 부천역 : 지하철 1호선 승차- 소사역에서 서해선 환승- 신천역에서 1번 버스 환승- 월곶동주민센터.월곶포구 정류장 하차- 도보 2분
  • 광명역 : 11-3번 버스 승차- 월곶동주민센터.월곶포구 정류장 하차- 도보 2분
  • 안산역 : 지하철 4번 버스 승차- 오이도역에서 1번 버스 승차- 월곶동주민센터.월곶포구 정류장 하차- 도보 2분
  • 시흥시청역 : 63번 버스 승차- 월곶동주민센터. 월곶포구 정류장 하차- 도보 2분

자가용

  • 수도권 외곽순환도로 시흥 IC – 시화공단(시화신도시) 방향 – 소래대교인근 서해안고속도 월곶 IC – 시흥시청 방향 – 소래대교 인근

대표음식

  • 조개구이, 해물칼국수, 바다에서 생산된 어패류

관광자료

해안선을 따라 길게 조성된 아름다운 산책로를 걸으며 탁 트인 바다를 감사하기에 적합하다. 특히 해질 무렵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벤치와 가로등 조명이 있어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 아주 그만이다. 싱싱한 횟감이 넘치는 어시장에서 한바탕 경매가 벌어지는 풍경도 볼거리 중 하나다. 포구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횟집들의 야경도 볼만하고 사시사철 싱싱한 횟감을 맛 볼 수도 있다. 갯골을 사이에 두고 인천 소래 포구와 마주하고 있는데, 경계부분으로 옛날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니던 철로가 놓여 있어 소래와 월곶 사이를 철로로 위로 걸어서 왕래할 수 있다. 2007년도에는 오이도에서 소래를 잇는 수인선 철도가 착공될 예정이다. 만선의 기쁨과 이를 기다리는 물의 아낙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모습 을 상상하면 휠씬 역 동적이면서도 정감과 낭만을 맛볼 수 있는 명소임.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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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곶포구는 시흥의 대표적 신도시로서 월곶 앞바다의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주거지와 어패류를 판매하는 상가 및 선착장을 만든 곳이다. 따라서 현재 월곶포구 자체에는 역사적 유래로서 다룰 만한 것이 없지만, 월곶동은 유서깊은 마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마유면의 월동리와 월서리였다가, 1912년 2월 5일 조선총독부 경기도 고시 제7호로 안산군내 동리(洞里)의 구역과 명칭을 변경할 때, 월곶리로 합쳐졌다. 마을에 월곶진이 있었던 데서 월곶리를 칭한 것으로 보인다. 1789년(정조 13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월곶리(月串里)’가 나오는데, 그 이후에 ‘월동리(月東里)’와 ‘월서리(月西里)’로 일시 분리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의 안산군 마유면 조에는 월동리(月東里)와 월서리(月西里)를 모두 ‘달월이’로 부른다고 기록했다. 지명의 유래가 된 월곶진이 언제 이곳에 설치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는데, 다만 1843년에 편찬된 『경기지(京畿誌)』안산군 승지고적(勝地古跡)조에 “마유면의 월곶에는 첨사가 있었는데, 예전에 강화도로 옮겼다 한다. 그 터의 모양은 지금도 뚜렷하다(馬遊面月串有僉使中古移設沁都云而其址形尙今宛然)”고 기록되어 있어서 조선시대에 해안방어체계를 수립하면서 내륙(포동쪽)으로 통하는 물길이 드나들던 길목에 해당하는 월곶에 진을 설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이후 청나라의 침략등으로 강화도 방비에 힘을 기울이던 숙종, 영조 년간에 강화도로 진을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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