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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EUNG CITY사이버역사관

삼국시대

삼국(철기)시대

철기시대의 시흥, 삼국시대가 열린다!
철기의 생산으로 인해 농업이 대규모화 됨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철기 제조기술의 발전은 다른 분야의 산업과 생산기술 분야에 영향을 미쳐 새로운 토기의 출현, 생산력의 증대로 이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이 가속화되어 최초의 국가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한반도의 대동강·청천강 유역에 철기가 퍼진 것은 B.C. 2세기 무렵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기 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삼국시대 이전)을 거쳐 한반도에서는 부부지역에는 고조선과 위만조선에 이어 고구려가 등장하고, 남부지역에는 삼한(마한·진한·변한)이 자리 잡았다. 서울·경기지역과 경주지역 또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세력이 형성되면서 백제, 신라 및 가야 등으로 발전되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시흥 지역에서 초기 철기시대나 삼국시대의 것으로 단정할만한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의 유적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초기 철기시대에 상당한 인구가 이 지역에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안현동, 과림동 등에서 두드림무늬 토기 등이 발견되는 등 이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도 일부 출토되고 있어 앞으로의 성과가 기대된다.

한반도의 초기 철기시대는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소국들이 형성되는 역동의 시기 였으며, 시흥 지역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지리적인 중요성으로 인해 삼국이 번갈아 지배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에는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건국된 초기 백제의 영향권 하에 있어 A.D. 4세기 무렵까지 안정적으로 백제의 지배 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475년(장수왕 63) 고구려의 남진으로 인해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가,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한 553년 (진흥왕 14) 이후로는 신라에 속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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