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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EUNG CITY사이버역사관

고려시대

고려시대

불교의 나라, 청자의 나라
고려시대의 문화는 불교문화의 청자문화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태조가 후손들에게 남긴 '훈요10조'에 불교를 잘 받들라는 내용이 첫 번째 가르침으로 전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교를 숭앙하는 문화는 고려 초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광종 대에 이르러 국사(國師) 제도를 마련하고, 과거제도에도 승과(僧科)를 두는 등 불교 융성을 위한 국가적 토대로 마련 되었다. 이후 전국 각지에 많은 사찰이 건립되고,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조성하고 등 불교의 영향력을 제외하고는 고려의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설명하기 여려울 것이다. 한편, 고려의 청자문화는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발달하게 되었는데, 11세기에 들어서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아름다운 비취색(翡翠色) 청자를 구현하게 되었고, 오히려 송나라에서도 극찬을 받게 될 정도로 독자적인 경지에 이르게 되어 고려시대의 문화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시에도 이러한 고려의 불교문화와 청자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유적이 있어 고려시대의 시흥 지역을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보물 제1324호인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始興 蘇萊山 磨崖菩薩立像)'은 소래산 중턱에 위치한 병풍바위(일명 장군바위)에 선각(線刻)되어 있는데, 머리에는 연화무늬와 당초무늬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이목구비가 부리부리할 정도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어 표현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마애상은 높이 14m에 이르는 거불(巨佛)로 우리나라 석불조각으로는 최대 규모에 속한다. 얕은 선각임에도 불구하고 기법이 우수하고 회화적인 표현이 뛰어난 세련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어 찬란했던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일면을 느낄 수 있다.

사적 제413호로 지정된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始興 芳山洞 靑瓷와 白磁 窯址)'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로 편년되는 유적으로 특히 중국의 가마축조방식인 벽돌가마(전축요:塼築窯)의 형태를 띠고 있어 중국으로 부터 도입된 요업 기술이 우리나라에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청자와 백자가 동시에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의 청자와 백자 발생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이나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는 고려시대 시흥 지역 일대를 영향권 하에 두었던 호족이나 세력가에 의해 조성 되었거나 운영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고려시대 시흥의 역사를 이해하는데에 상당히 의미있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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