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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EUNG CITY사이버역사관

조선시대

조선시대

연꽃의 고을, 시흥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어 있는 '관곡지(官谷池)'는 조선 전기의 유명한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명나라에서 전당홍(錢塘紅) 연꽃씨를 가져다 심은 곳이다. 이로 인해 당시의 안산군은 ‘연꽃의 고을[蓮城]’이라 불리게 되었으니, ‘관곡지’는 우리시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특히, ‘관곡지’는 장소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관곡지’의 유래와 관리.운영의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는 고문서들이 함께 전해지고 있어 지역사적인 가치를 더하고 있다.
‘관곡지’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여러 점의 고문서 중 1846년 권용정(權用正)이 작성한 「연지사적(蓮池事蹟)」은 ‘관곡지’의 유래와 ‘관곡지’를 정비하게 된 배경 및 경과, 연지기[蓮直]의 배치와 관리 등에 관한 내용을 종합하여 정리한 책으로, 이 한권의 책을 통해 ‘관곡지’의 전모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호조벌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시흥
경종(景宗)대의 '호조방죽[賬廳堤堰]' 축조와 '호조벌[石場屯]' 의 조성은 시흥 지역 토지이용의 일대 변화를 가져왔던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당시까지 어촌 중심이었던 시흥 지역이 농촌과 어촌이 어우러진 곳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권농사(勸農社)' 는 정조(正祖)가 1789년 화성(華城)에 행차하면서 이 지역을 지나가게 된 것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권농사'는 정조의 행차를 지역 차원에서 맞이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으나, 1891년에 이르러 본격적인 동약(洞約)조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정조의 권농정책은 농업 생산력을 증진시키고, 소농을 보호하는 두 방향으로 추진되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이 화성에 만들어졌던 제언(提堰)과 둔전(屯田)이었다. 화성에서의 성공은 정조의 권농관(勸農觀) 형성과 권농정책 추진에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이해된다. 『권농편』에 수록된 『역농문』에는 당시 사회에서 만연하던 지주제의 발달과 과도한 농민층의 분해를 비판하고, 향촌 단위의 공정한 조세부담, 빈농 보호를 통해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취지가 잘 드러나 있는데, 이는 정조의 권농관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앞선 시기에 이미 제언과 둔전을 경험했던 시흥은 정조의 권농정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역 조건을 바탕으로 결성된 '권농사'는 정조의 향군(鄕軍)설치 및 둔전 운영방식에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호응한 좋은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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