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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EUNG CITY사이버역사관

장현동

  • 연성동은 시흥시 중심부에 위치한다. 북동쪽으로 매화동, 동쪽으로 목감동, 남쪽으로 능곡동과 안산시, 서쪽으로는 장곡동, 남서쪽으로 군자동, 북서쪽으로는 신현동과 경계를 이루며 둘러싸여 있다. 면적은 10.05㎢로 시흥시 전체 면적의 7.5%를 차지한다. 1989년 시흥시 출범 당시 연성동은 개청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1년 1월 15일 ‘시흥시출장소설치조례’(시조례 제230호)에 따라 목감동 관할의 광석동ㆍ능곡동ㆍ하상동과 안산동 관할의 화정동, 신관동 관할의 하중동, 거모동 관할의 장곡동ㆍ장현동이 분리되어 연성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1년 9월 1일 ‘시흥시행정운영동의설치및동장정수에관한조례’(시조례 제282호)에 따라 연성출장소는 연성동으로 승격하였다. 승격 당시 연성동에 포함되어 있던 법정동인 장곡동은 2014년 3월 1일 분동되어 별도의 행정동이 되었다(시조례 제1356호).
    ‘연성(蓮城)’이라는 동명은 법정동인 하중동의 관곡지(官谷池)와 관련된 지명이다. 조선 전기에 강희맹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가져온 연꽃 씨를 관곡지에 심어 인근으로 널리 퍼졌다 하는데, 이를 계기로 당시 안산군의 별칭이 ‘연성’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로 동명을 ‘연성’으로 지었다.
    「近世朝鮮五萬分之一地形圖」(1917년)에 보이는 연성동 주변

    「近世朝鮮五萬分之一地形圖」(1917년)에 보이는 연성동 주변

장현동

  •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마유면의 장상리(長上里)와 조현리(鳥峴里)였다가, 1912년 안산군의 동리 명칭과 구역이 정비될 때, 장현리(長峴里)로 합쳐졌다. 두 마을을 통합하면서 장상리에서 ‘장’을, 조현리에서 ‘현’을 따서 장현리라 한 것이다.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1914년 3월 1일 안산군이 폐지되어 시흥군과 수원군으로 분리 통합될 때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으며, 같은 해 3월 13일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3호로 옛 안산군의 마유면ㆍ대월면ㆍ와리면을 통합하여 군자면을 설치함에 따라 군자면 장현리로 편제되었다. 이후 별다른 변화없이 유지되다가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의해 시흥시가 출범하면서 시흥시 장현동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년 경)에는 ‘장종리(長宗里)’와 ‘마현리(馬峴里)’가 나오는데,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년 경)의 기록과 비교해 보면 현재 장현동에 속하는 장상리와 장곡동에 속하는 장하리를 합친 곳이 장종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마현리가 조현리를 잘못 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지지자료』에서는 장상리를 장하리와 같이 ‘진말우’로, 조현리를 ‘새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모바일환경에서는 좌우로 이동하여 내용(표)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명의 변천을 년도별로 제공
    1789년대한제국기1912년1989년
    長宗里 진말우(長上里) 長峴里 長峴洞
    - 새재(鳥峴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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